개인산행및여행

2012년 12월 22일(토) 백봉산 산행

제석봉 2012. 12. 22. 21:42

동네 마실가는 복장에 물 한통 넣고, 그래도 카메라는 들고 나선 산행.

5백여미터 남짓한 산이 지리산보다 더 기후의 변화가 무쌍했다.

 

산 아래에서는 얇게 입은 옷마져 벗어야 할 정도로 따뜻했는데,

산위로 오르자 눈인지 상고대가 바람에 날리는 것인지

비늘같은 얇은 하이얀 가루가 시야를 괴롭혔다.

워낙 습기에 취약한 IT기기라 카메라는 수건으로 싸 안았지만,

귀에 꽃은 MP3가 얼어붙은 귀와 함께 아픔으로 머리를 괴롭혔다.

집을 나서며 버퍼를 가겨갈까 말까한 것이 화를 자초하고 만 것이다.

유비이면 관우나 장비가 아니라 무환인 것을......

 

고즈넉한 묘적사는 아름다웠다.

비록 묘적사 옆에서보지 않았어야 할 장면을 보고 말았지만

따뜻한 날씨에 아름다운 계곡과 어울어진 멋진 묘적사를 본 것은 보람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왕들의 사냥터에 왕방산, 해룡산과 함께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산이 묘적산인데, 항상 묘적산이 어디일까 궁금했었다.

왕들의 사냥터라면 절대 한양 주변을 벗어 나 있지는 않았을 것인데

양주 포천 남양주, 광주를 다 살펴도 묘적산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묘적사가 아래에 있는 걸 보니 백봉산이 묘적산이 아닌가 한다.

옛날에는 백봉산이 아니라 백봉으로 불리던 산이름으로 보아도 그렇고,

산아래에 산세에 비해서 절이 필요이상으로 많은 것 또한 그렇다.

조선은 불교를 억압한 관계로 힘들고 어려운 일은 주로 승려를 동원했다.

백성의 부역에 대한 원망을 줄이기 위해서도 먼저 부역이 있으면 승려를 동원하고,

그래도 모자라면 백성을 동원했다.

우리가 가끔씩 도는 삼각산의 북한산성 또한 승려들이 쌓은 것이다.

왕들의 사냥에 번거러운 것이 한 두가지 이겠는가?

이런 뒷감당을 한 것이 현재의 묘적사를 비롯한 백봉산 아래의 많은 절이 아닌가 한다.

다음번 갈때까지 좀 더 사료를 뒤져 봐야겠다.

 

혼자 갔기 때문에 사진에 사람은 없습니다.

 

남양주시청 건너 등산로 입구. 다산 정약용의 목민관을 병풍처럼 만들어 놓았습니다. 

남양주 시청 

 

등산로 입구 

백봉산 안내도인데 많이 부실합니다. 

마실길 같은 아늑한 등산로. 

 

 

남양주의 산에는 이렇게 시를 적어 표지판마다 걸어 놓은 것이 특징입니다. 다산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것 같은데,

기실 다산은 문학적 업적보다는 목민의 업적이 더 크죠. 저술도 대부분 목민에 관한 것이구요. 

어제 내린눈을 솜이불처럼 두른 소나무 

 

 

위로 올라갈수록 상고대가 점점 길어집니다. 

 

알자리 같은데 무슨 이유로 만들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습니다. 

어느 산에서나 볼 수 있는 돌탑 

돌탑 옆의 커다란 바위 

상고대 

 

끝없이 이어지는 상고대 

 

 

마치 소나무에 눈이 내린 것 같습니다. 

상고대 터널 

 

 

정상에 갈수록 상고대의 길이가 점점 길어집니다. 

 

 

 

 

 

 

정상석 

정상의 팔각 정자 

 

 

하산길의 잣나무 숲 

 

묘적사 공양간 굴뚝 

산신각입니다. 써놓은 글자는 산령각.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동물이 절간의 개죠. 카메라를 엄청 겁내더군요. 

묘적사 석굴암 내부 

석굴암 

산신각에서 바라본 묘적사 전경 

산신각 오르는 길. 고즈넉합니다. 

조금 유명한 탑인모양입니다. 

대웅전 

마하선실 

 

일주문의 역활을 하는 것 같기는 한데 앞에 또 건물이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