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영산 지리산을 다시 갔다.
기록적인 폭염을 거듭하고 있는 날씨였지만 지리산은 시원했다.
아직 인간의 욕망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지리산이 아래와 같이 더워지는 날 지구에 사람은 없겠지.
해마다 여름 이맘때쯤이면 가는 지리산 종주산행이다.
이번에는 지금까지의 산행과 반대방향으로 진행해 보기로 하였다.
혼자 가는 산행이니 아무렇게나 가도 상관이 없다.
이래서 혼자 하는 산행은 마음이 편하다.
지리산 산행은 북서에서 남동으로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화엄사나 천은사, 혹은 성삼재에서 시작해
인간들이 사는 만수산을 넘고 또 넘고,
머리를 꽉 채운 수많은 속세의 일로 괴로워하고,
발이 부르트도록 걷고 또 걷고,
그렇게 하여 세석을 지나고, 연하의 세계를 지나고,
인간의 죄업을 불태우는 제석을 지나고,
통천문을 지나 도솔천인 천왕봉에 오르는 길.
이것이 아무래도 지리산을 오르는 바른 길이라 나는 생각한다.
말 그대로 나의 생각일 뿐이다.
7월 그믐 날(양력기준) 마지막 시간 욕망의 도시인 서울을 떠나
함양의 백무동으로 갔다.
동녘이 밝아 오려면 한참이 남은 시간
주섬주섬 산행을 준비하고 머리에 불을 밝힌 채 산행에 나선다.
많이 다녀 익숙한 길이지만 어두운 밤길은 그래도 어렵다.
어둠과 산, 그리고 나무 이외는 아무것도 없는 길.
오른쪽으로 깜깜한 계곡을 아우성으로 흘러가는 물소리만이 유일한 동행이다.
자신이 왜 함양에 있어야 하는지 모를 하동바위를 지나고
가파른 길을 계속해서 오른다.
몸에 열기가 피어오르고 땀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한 손에 쥔 손수건은 이미 땀으로 흥건하다.
사람도 없다. 혹시 귀신이라도 있으면 말벗이라도 하련만
귀신이 있을 리 만무하니 혼자 오른다.
참샘이 가까워지며 머리의 매인 불에 비친 앞은 엷은 운무까지 있다.
참샘에 도착하며 동녘이 밝아왔다.
천왕봉에 해가 오르나 보다.
다행이 참샘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고, 먼저 도착한 사람 몇 몇이 쉬고 있었다.
두어 바가지 물을 마시고 다시 길을 제촉했다.
참샘을 뒤로하고 소지봉 안부에 올랐다.
우리가 산을 다니며 흔히 이야기하는 깔딱고개 즉, 힘든 곳은 지났다.
시계를 힐끗거리며 비교적 쉬운 길을 빠르게 걸어
아침을 먹을 수 있는 장터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동쪽이 붉었다가 맑아지며 사방이 밝아왔다.
잠에서 깬 산새가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했다.
나뭇잎 사이로 내려 비추는 햇빛이 싱그러웠다.
길 양옆으로 수많은 야생화가 피어 꽃길을 이루고 있었다.
8월의 지리산은 야생화 천국이다.
비록 앎이 짧아 야생화의 이름은 모르지만
그래도 꽃의 아름다움은 안다. 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장터목에 도착해 아침을 해 먹었다.
비닐에 싸간 두어 숟갈 밥에 북어국을 끓여 간단히 아침을 해결했다.
배낭을 장터목대피소에 맡겨두고 천왕봉 오르는 길을 잡았다.
돌아 올 길이기에 빠르게 진행했다.
천왕봉에 오르니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이 없었다.
느긋하게 사방을 둘러보며 조망을 감상하고,
천왕봉 바위 바로아래 천주(天柱)라고 새겨 놓은 글자도 사진에 담았다.
다시 장터목을 향해 내려간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제석봉의 부드러운 풀과 고사목,
새로운 아침을 맞는 어린 주목들도 보고, 사진도 찍으며
제법 여유도 부려본다.
다시 장터목에서 배낭을 메고 연하를 지나 세석평전으로 간다.
공기가 깨끗해서 그런지 촛대봉이 한걸음만 옮기면 닿을 듯 가깝게 보였다.
편안한 연하를 사진도 찍으며 느린 걸음으로 지났다.
11시를 조금 넘겨 세석대피소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어야 한다.
12시 전에 세석을 출발해야 오늘 몸 누일 연하천대피소에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다.
배가 고픈 것은 아니었지만
다음 대피소인 벽소령대피소가 멀기도 하지만
벽소령대피소가 보수관계로 폐쇄중이기 때문에 세석에서 점심을 먹어야 했다.
샘에서 물을 길어오고 즉석밥을 데우고, 라면을 끓였다.
배가 불렀다.
다시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우고 길을 나섰다.
이제 6시간여를 쉼없이 가야한다.
영신봉, 칠선봉을 지난다. 간간히 사람들도 지나친다.
오후 뜨거운 태양아래의 지리산은 뜨거웠다.
특히 그늘이 없는 곳의 지리산은 뜨거웠다.
가끔씩 불어오는 파아란 바람이 뜨거운 열기를 식혀 주었다.
선비샘에 도착했다.
지리산에 제법 비가 온 것 같은데 선비샘에 물이 별로 없었다.
세상에 선비가 차츰 줄어드니 선비샘에도 물이 줄어드나 보다.
8월의 지리산 바람은 맑고 투명하고 파아란 바람이었다.
인간의 욕망으로 얼버무려진 도시의 끈끈한 바람이 아니었다.
공사중인 벽소령대피소에서 잠시 쉬며 간식을 먹고 물도 마셨다.
두어시간 남은 오늘의 종착지인 연하천대피소로 이제는 무거워진 발걸음을 옮긴다.
4사람의 나이가 제법 있어보이는 사람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동행을 했다.
느리게 걷는 것도 힘들다.
하지만 시간이 넉넉하니 빨리 걸을 필요는 없었다.
이름 모를 꽃이지만 열심히 쳐다보며 넉넉하게 걸었다.
17시를 중간쯤 넘겨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했다.
벽소령이 폐쇄된 탓인지 연하천대피소에 사람이 많았다.
예약확인을 하고 잠자리와 모포를 받아 배낭과 함께 지정된 자리에 놓았다.
저녁을 위해 필요한 도구들을 꺼내 대피소 앞으로 갔다.
짧은 바지로 갈아입은 탓인지 제법 서늘했다.
역시 즉석밥을 데우고, 북엇국을 끓이고, 저녁을 먹었다.
바로 옆에서 저녁을 먹던 사람들이 삼겹살을 구워 같이 먹자고 했다.
고기를 먹지도 않지만 산에서 푸짐하게 먹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사양했다.
연하천대피소의 밤은 추웠다.
한겨울에도 이불을 완전히 덮고자지는 않는데 모포를 머리 끝까지 뒤집어 썼다.
한번씩 쏟아지는 바람의 냉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피곤한 탓인지 곤한 잠을 잤다.
2일,
이른 새벽에 일어나 또 다른 산행준비를 했다.
아침을 먹고 고양이 세수도 하고.
물통에 물도 가득 채우고 깜깜한 길을 나섰다.
명선봉, 토끼봉을 지나 화개재에 도착했다.
날은 이미 밝아왔고, 이른 아침 출발한 사람들이 빠른 걸음으로
천왕봉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나만 느릿느릿하게 세상 볼 것 다 보아가며 나아가고 있었다.
힘든 계단을 올라 삼도봉에 도착했다.
손수건을 줄에 말려 놓고
반야봉의 웅자에 감탄도 하고 아침이 아름다운 피아골도 내려다 보며
열심히 사진을 담았다.
반가운 얼굴들도 만났다.
아침 노고단탐방소를 출발해 왔다는 예전의 산악회 사람들이었다.
지리산이 많이 낮아지긴 했나보다.
역시 위대한 산이다. 이렇게 어떤 사람도 담을 수 있는 산이니 말이다.
노루목에서 반야봉을 오를까 잠시 고민했다.
역시 포기했다.
아무래도 무리였다. 이미 종아리에 약간의 신호가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임걸령에 도착해 배낭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했다.
지리산에서 가장 물맛이 좋은 임걸령 샘에서 두어 바가지 물도 마시고,
물통의 물도 보충하고.
이제 노고단으로 간다.
질기고 긴 산행의 끝이 보인다.
화엄사로 하산할 예정이었으나 역시 종아리가 문제였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 가기에는 종아리가 편치 못했다.
노고단대피소에 도착 시간이 9시 7분이었다.
성삼재에서 구례로 나가는 버스가 성삼재 주차장에서 9시 40분에 있다.
아무래도 2킬로미터를 30여분에 가는 것은 무리였다.
버스가 없으면 택시로 이동하기로 하고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빠르게 걸었다.
성삼재에 도착하니 9시 38분이었다.
2분의 아슬아슬한 시간으로 버스를 탔다.
이후 구례에서 서울가는 버스도 아슬아슬했다.
구례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8분이었는데
10시 10분차가 막 하동에서 도착하고 있었다.
옷도 갈아입고, 밥도 먹고, 세수와 양치도 할 계획이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10시 10분, 버스에 올라 1무 1박 3일의 지리산 산행을 마무리 했다.
화엄사를 들르지 못한 것이 이번 산행을 미완으로 마무리 짓게 했다.
다시 지리산 산행 계획을 기획한다.
반드시 화엄사를 들를 수 있게.
7월 그믐 11시 59분, 이놈을 타고 지리산으로 갑니다.
정적에 휩싸인 지리산 백무동탐방소 앞
하동바위를 어둠속에 담았는데 꽝입니다.
많은 물이 흐르는 참샘
마치 저 나무숲에 불이 난 것 같습니다. 동쪽으로 아침이 밝아옵니다.
아침의 성찬을 준비하는 지리산 마루금. 연하선경과 촛대봉등이 보입니다.
아침이 왔습니다. 주마루금과 반야봉
중산리 계곡 방향
제석봉
천왕봉이 바로 눈앞에
통천문. 하늘로 갑니다.
천왕봉 오르는 길
천왕봉 아래도 야생화 천국
천왕봉에서 내려다 본 중봉과 하봉
천왕봉 아래 바위에 새겨져 있는 천주. 천왕봉이 하늘 기둥입니다.
처주 글자안에 있는 이천미터라는 글인 듯. 아마 천주 끌자 한참후에 누군가 새겨 넣은 듯
마야계곡과 중산리계곡
정상에서 인증. 사람이 많이 없어서 남의 손을 빌어 남겼습니다.
천왕봉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마루금. 오늘과 내일에 걸쳐 길게길게 기야합니다. 중간쯤에 반야봉이 보이고 멀리 노고단도 보입니다. 아주 멀리 오른쪽으로 만복대도 보입니다.
중봉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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