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덕의마을+의령읍)

琴湖池를 다녀와서(2012년 7월 21일)

제석봉 2012. 8. 10. 08:32

다녀온지는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올려야 하나, 아니면 그냥 남겨 놓아야 하나를 두고 고민을 거듭하다가 올려본다.

 

부모님이 계신 곳을 다녀왔고, 그 고장의 명물을 촬영해 왔는데

그런 고민을 하게된 연유는

우선 사진의 상태가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연무가 끼인 날씨 탓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새로 산 렌즈에 익숙치 못함이 원이이었다.

다음은 금호지의 물이 어릴적 멱감고 놀던 때의 물이 아니었다.

거짓을 조금만 보태면 발을 담그기가 어려울 정도로 물은 탁해졌고,

주변의 경치 또한 그때의 금호호가 아니었고,

못의 크기 또한 많이 축소되어 있었다.

 

신라시대 때 자연적으로 생긴 웅덩이 비슷한 것을 축조해 만든 못이라

어릴때는 잘 몰랐지만(누구 하나 설명해 주는 사람도 없었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역사의 흔적이었는데,

대부분이 사라져 버렸고 남아있는 흔적조차 살아있는 힘꽤나 있는 자들의 욕심에 의해

초라하기 그지 없는 대우를 받고 있었다.

 

계획하고 있는 특집을 위해서는 한 두 번의 방문이 더 필요하겠지만,

부모님이 계신 곳을 다녀온 흔적이니 아니 남길 수 없어 부끄럽게 올려 본다.

 

금산교 옆에 있는 금호지 설명서 

금산교라 붙여 놓았더이다. 

잘 정비가 된 산책로. 이른 아침인데도 많은 이들이 운동 중이었습니다.

이름은 저러한데 꽃동산은 어디인지??? 

용심마을 쪽에서 바라본 금호지의 전경. 연무가 끼이고 물이 탁해서 그렇지 산그림자와 나무 그림자가 일품인 못인데..... 

무너미 둑 옆의 못 말. 옛날에는 저런 곳이 못 군데 군데 있어서 운치가 있었고, 가물치의 서식지이기도 했는데,

지금은 못 전체가 이런 말들의 천지가 되어 버렸더군요. 

도대체 저 수치는 어떻게 나온 것일까 의문이 들 정도로 물의 탁도는 심했습니다. 

제가 자란 면에도 훌륭한 음악가 분이 계셨더군요. 

독립운동을 하신 분의 우국시비라 하는데, 한자의 판독이 쉽지는 않았습니다.(흘림체에다 마모된 부분이 많아서)

다음 특집 때 번역 내용만 올리도록 해볼까 합니다. 

월아산 삼학사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금호못만의 특징입니다. 원래 둑을 막아 만든 호수의 둑에는 절대 나무를 심지 않습니다.(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면 둑에 균열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특이하게도 금호못만이 둑으로 된 연못임에도 불구하고 둑에 나무들이 있습니다. 

못둑의 아름다운 소나무 군락 

옛날 양조장이 있던 부근의 아름다운 소나무. 어릴때는 우리의 놀이터였습니다. 

못가의 연꽃. 습지인지 못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입니다. 

 

 

비가 오지는 않았는데, 이슬이 저렇게 많이 모인 걸까요? 

체육공원의 입구에 있는 금산면의 개략도 입니다. 

퇴계선생의 과 청곡사비와 금호지 방문 기념비 입니다.

일제에 의해 옮겨졌던 것을 원래의 자리에 가져다 놓았다는데 관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더군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국회의원 한번인가 두번인가 한 사람의 공덕비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더군요. 

무엇이 금산면을 위한 것인지, 금산면을 제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혹시 입으로만 사랑하는 것은 아닌지???????????

 

 

 

過靑谷寺時

  

琴  山  道  上  晩  逢  雨

금산길 지나다가 늦게야 비를 만나니

 

靑  谷  寺  前  寒  瀉  泉

 청곡사 앞 솟는 샘물 차기도 하네

 

渭  是  雪  泥  鴻  爪  處

 세상일 눈 위의 기러기 발자국 같아

 

存  亡  離  合  一  潛  然

 옛사람 간 곳 없어 또 한번 눈물짓네

퇴계선생이 다녀간 일을 기록한 것 같은데 시간이 부족하여 적어 오지 못했습니다. 다음에 방문하면 마모되어 사라지기 전에

옮겨 적어 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사동마을 쪽에서 본 금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