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덕의마을+의령읍)

내가 성장한 진주시 금산면 이야기

제석봉 2010. 2. 10.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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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리(加芳里)

 

   고려조(高麗朝)때부터 마을이 있었던 곳으로 조선조 때에는 진주군 대여촌면의 속리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진주군 대여촌면(代如村面)·기동(基洞)·가방동(加芳洞)·사곡동(沙谷洞)각 일부를 병합하여 가방리(加芳里)라 하였다.남성(南星),석교(石橋),관방(冠坊)3개 마을로 형성되어 있으며 시설채소가 주 소득원이다.본래 이곳은 갓방 또는 관방,갑방,가방이라고 하였는데 금산면내 방(坊)이 두 개로서 관방(冠坊)과 안심방(安心坊)이 곧 그것이다.

남성(南星) : 본래 진주군 대여촌면의 지역이다. 1914년, 지방행정구역의 통폐합으로 금산면 가방리에 통합된 마을이다.

검당골(黔堂谷) : 남성리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검당골못 : 검당골 마을 앞에 있는 못이다.

기동(基洞) : 남성마을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텃골이라고도 한다.

대모통이 : 검당골 동쪽 현 가방초등학교 입구에 있다.임진왜란을 극복하기 위하여 장수와 많은 군졸들이 산과 들에서 훈련하여 왔는데 간신배에 몰려 억울하게 잡혀 살해 되었다고 하여 너무 억울하게 죽은 넋이 대나무로 솟아났다고 하여 대모통이라한다.

석교(石橋) : 남성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1900년대 초계변씨가 처음 터전을 잡은 마을로서 남성마을의 일부였으나 1982년 석교마을로 분리되었다. 마을앞 하천의 길이 5m의 돌다리가 있었다 하여 지은 이름이다.

고등산(高嶝山) : 돌다리마을 뒷편에 있는 산이다.지형이 고동처럼 생겼다 하여 고동골이라 부른다.

윗들 : 돌다리앞 덕의마을 뒤쪽에 있는 들이다.

디지기웅덩 : 남쪽에 있는 논들이다. 디지기(두더지)가 팠다하여 지은 이름이다.

선박새미 : 돌다리 앞에 있는 샘이다.

관방(冠坊) : 본래 진주군 대여촌면의 지역으로 조선조 초기부터 있던 마을이다. 가방리3개 행정리동 중 단독 마을이다. 옛부터 선비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하여 관방이라 하였다.

망고개 : 관방마을과 사동마을을 오가는 고개이다.이조판서 이준민(李俊民)이 일시 귀향하던 중 수성촌(修誠村)에 사는 수찬 강응태(修誠姜應台)와 상론(相論)코자 가방(嘉坊)으로 간다는 말을 전하고 기다리던 고개인데 이를 후인이 망고개라고 하였다.

독재골 : 동리와 떨어진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옛날 독고사(篤古寺)가 있어 후인이 독고사에 연유하여 독재골이라고 부른다.

개산골 :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가방들(嘉坊) : 마을 앞에 있는 큰 들이다. 남강댐 준공 이전에는 남강이 자주 범람하여 들이 절반 이상이 왕모래밭 이었으나 지금은 경지정리가 잘된 들이다.

논들새미 : 동쪽 논들에 있다. 수량(水量)이 풍부한 샘이다. 한때 간이상수도 수원이기도 하였다.

안모리 : 안쪽에 있는 모퉁이이다.

안모리밑덤 : 안모리밑에 있는 절벽이다.

방모리 : 바깥쪽에 있는 모퉁이이다.

방모리더미 : 방모리 밑에 있는 덤이다.

밤상골 :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서원갓 : 북쪽에 있는 산이다.임천서원(臨川書員)의 소유에서 연유된 것이다

 

용아리(龍牙里)

 

  본래 진주군 대여촌면의 지역이다.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주군 대여촌면 용심동(代如村面龍심洞),금산면 월아동(今山面月牙洞)·중촌동(中村洞)일부로서 용아리(龍牙里)라 하였다.

  하동정씨(河東鄭氏),창녕성씨(昌寧成氏),진양하씨(晋陽河氏),진양강씨(晋陽姜氏)등이 대성이다. 대어촌면 용심동의 용(龍)자와 금산면의 월아동의 아(牙)자를 따서 용아(龍牙)라고 하였다.

용심(龍심) : 본래 진주군의 대어촌면의 지역이다. 비룡심수(飛龍심水)형국(形局)의 크고 깊은못 안쪽에 있는 마을이다. 조선조 후기(1905년)이전부터 마을이 있던 곳이다. 하동정씨,창녕성씨,진양하씨,진양강씨 등이 주로 살고 있으며 6개 자연마을 이산재되어 있다. 특히 월아산 두 봉우리가 금호지에 비친 모양은 한폭의 그림같다.

가는골 : 용심 동쪽에 있다. 아주 가는 골짜기이다.

물뫼등 : 임진왜란때 충용장군 김덕령(忠勇將軍 金德齡)이 월아산에 목책성(木柵城)을 쌓고 방어할 때 장군의 말이 죽어서 묻은 말무덤이다. 이 말 무덤은 지금도 현존하며 이를 물뫼등이라고 한다.

금호지(琴湖地) : 용심 서북쪽에 있는 약 23정보 되는 큰 못이다. 신라시대에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축조한 것으로서 한 눈으로는 못 전체의 관망이 불가한 형상이다. 주위의 연장(延長)이 5㎞, 평균 수심이 5.5m, 250정보의 몽리 능력이 있다. 황용과 흑용이 승천을 겨루다가 황룡은 승천하고 흑룡은 도사가 던진 칼에 맞아 죽었다는 전설도 있다.

꽁오등 : 용심 함곡(函谷)의 중앙에 뻗어진 산이다. 꿩이 날아가는 형국이라 한다.

매봉재 : 함곡 북쪽에 있다.

독서골 : 새몰 건너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뱀처럼 길고 꼬불꼬불하다고 불려진 것이다.

방하곡 : 큰 몰 뒷산에 있는 골짜기이다. 모양이 방아가래 모양같다고 한다.

삼밧골 : 남쪽에 있는 세모진 골짜기 이다.

새 몰 : 남쪽에 있는 새로 생긴 골짜기 이다.

안용심 : 안쪽에 있는 마을이다. 창녕성씨 통덕락(通德郞)후손이 살고 있다.

재 공 : 뒤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옛날 이곳에 재실이 있었다 한다.

진등 : 용심 함곡(函谷)에 있는 긴 등이다.

큰 몰 : 용심 6개 자연마을 중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큰몰뒷산 : 형국이 비용심수(飛龍심水)의 형국이다.

하담 : 큰 몰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주로 진양하씨가 살고있다.

함곡(函谷) : 큰 몰 뒷산 뒤에 있는 골짜기이다. 일명 함골이라고도 하며 사방이 산이 쌓인 함지 모양  이다.

서짓골 : 용심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취락개선마을(聚落改善) : 서쪽 금호못 안 산 기슭에 있다. 1970년대에 새로 생긴 마을이다. 옛 마을의 이름은 외도계(外陶溪)라 하였다.내도계(內陶溪)에는 진양강씨의 재실이 있다.

월아(月牙) : 진양의 명산 월아산하에 자리잡은 평화로운 마을이다. 달(月)이 돋을 때 남북으로 솟아있는 두 봉(峯)의 산이 달을 토(吐)하듯이 보이므로 일명 달내미라고도 한다. 경주김씨(慶州金氏), 밀양박씨(密陽朴氏), 김해허씨(金海許氏)가 대성이다.

마당바위 : 월아마을 동쪽에 있다. 마당모양의 넙적한 바위이다.

산 질 : 뒷산 중턱에 있는 셈이다. 아이 못낳는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공을 들이면 아이를 낳는다는 이야기가 전하여지고 있으며 또 정월 대보름에는 마을의 평안을 위하여 마을에서 가장 깨끗한 사람이 제사를 지애고 있다 한다.

정새미 : 월아산 질매재 밑에 있는 약샘이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차가와 바로 마시지 못할 정도이며 칠월칠석(七月七夕)에는 약물이라 하여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다고 한다 .지금은 월아 마을 주민의 상수원이 되고 있다.

질매재 : 월아산 두 봉우리 사이를 말한다. 금산 ∼ 진성면 간을 넘나드는 고개이다.형국이 소(牛) 짐 싣는 질매와 비슷하다고 하여 불려졌다고 한다.

국사봉 : 월아산 서쪽 봉우리이다.(해발482m) 한발이 계속되면 나라에서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일명 무제등이라고도 하며 자유당 때까지도 기우제를 지냈다.

무제새미 : 월아산 중턱에 있는 샘이다. 옛날 한발시에 기우제를 올릴 때 이샘의 물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통사바위 : 월아산 서쪽 봉우리에 있다. 병풍처럼 생긴 넓고 큰 바위이다. 옛날 이곳에서 통신을 하였다 한다. 임진왜란 때 무를 숭상한데서 생긴 말이다.

월아산 목책 : 청곡사의 뒷편 장군대 봉우리에 있다. 성터로 충용장군 김덕령이 설치한 것 이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1978년, 월아마을 입구에 군수 이원민이 세운 유지비가 있다

 

송백리(松柏理)

 

  1914년, 진주군 금산면 백동(今山面栢洞) 일부로서 송백리(松栢理)라 하였다.

 

송백(松栢) : 조선조 전기부터 사람이 살고 있던 곳이다. 진양지(晋陽誌)에 의하면 고 생원강급(故生員姜汲)의 송정(松亭)이 백동 봉황대(柏洞鳳凰臺)에 있어 대구부사(大邱府使) 김윤안(金允安)이 소촌찰방(召村察訪)으로 있을 때 봉황대로 고쳤다한다. 후손은 현재 금곡면 인담에 살고 있다. 임진왜란 때 밀양박씨, 김해김씨의 선조가 피란하여 창동(創洞)하고 그 후 고성이씨가 속사리에서 이주하여 현재 약100호가 살아 일촌을 이루고 있다. 창동 당시에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무성하여 잣골이라 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송백리(松柏理)라 개칭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소나무는 무성하나 잣나무는 없다. 안담, 건너담, 어유곡(漁遊谷)등 세 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어유곡은 1988년 공군교육사령부 이전으로 소개되었다.

안 담 : 윗쪽에 있는 마을이다. 주로 밀양박씨와 고성이씨가 살고 있다. 송백리 안쪽에 있다하여 안담 또는 내동이라 한다.

건네담 : 바깥쪽에 있는 마을이다. 즉 안담의 건너편에 있다하여 건네담 또는 외동이라 하였고 주로 김해김씨가 살고 있다.

넌고개 : 서쪽에 있는 고개이다. 옛날 나루가 있을 때 나루터로 넘나다니는 고개였다.

뱃고개 : 안담 남쪽에 있는 고개이다. 옛날 나루터로 가는 뱃길고개이며 진주사람들이 진성, 반성 등지로 가는 한길이었다. 금산잠수교(今山潛水橋) 개통으로 나루도 없어지고 잡목만 무성하다.

어리골 :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맞은편 검은 작살 뿌리(바위)밑에 웅덩이가 있어 아무리 한발이 계속되어도 물이 마르지 않고 고기가 놀고 있다하여 어유곡이라 하였다. 1988년 공군교육사령부 이전으로 소개되었다.

함새미 : 안담 중앙에 있는 샘이다. 수질이 좋아 안담 사람들의 식수원이었다. 샘의 주위에 2m되는 돌로 새미정자(井)형으로 함을 짜 얹어 아낙네들의 물기르기에 편하게 하였다 하여 함새미라고 한다.

백새미 : 거너마을(외동)에 있는 우물이다. 백일동안 가물어도 우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하여 백(百)새미라고 하였는데 1987년에 도로 확포장으로 폐정되었다.

농바위 : 안담 남쪽 벼랑위에 있는 바위이다. 벼랑과 연하지 않고 벼랑 중앙에 농(籠)모양으로 생긴 바위이다.

방태소 : 안담 남쪽더미(절벽) 아래에 있는 소(沼)이다. 물이 깊고 깨끗하여 옛사람들이 아이의 태(胎)를 버린 곳이며 아이의 무병장수를 빈 용왕제를 올리기도 하였다. 1980년대에 송백양수장이 되었다.

황유진(黃柳津) : 안담 남쪽에 있었던 나루터이다. 마을 사람들이 진줄로 가던 유일한 뱃길이며 진주사람들이 마산, 대구로 가는 나루터였다. 주점이 칠 팔채있어 매일 길손이 분비었다. 누른 버드나무가 많아 황유진이라 하였고 진주부자 김기태, 홍성윤 등의 시혜불망비(施惠不忘碑)가 있어 당시를 연상케 한다. 지금은 폐선, 폐도되어 사람이 통행할수 없을 정도로 아카시아 등 잡목만 무성하다.

큰 등 : 송백리 안담 남쪽에 있는 산이다. 산의 형국이 커서 큰등 또는 꾀꼬리새와 같다하여 일명 꾀꼬리등이라고 한다.

새앙골 : 큰등 맞은편에 있는 골짜기이다. 꾀꼬리(원앙새) 집같이 생겼다 하여 새앙골이라 한다.

샛등 : 꾀꼬리등과 봉합덤 사이에 있는 산이다. 산과 산 사이에 있다하여 샛등이라고한다.

지골 : 안담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떼가 많다고 하여 이름지은 곳이다.

조산목 : 안담 사람들이 나들이 하는 길목이다. 마을의 태평을 위하여 창동 당시 산을 만들고, 서나무 등을 심었다고 하나 지금은 아름드리 상수리 한 그루만 남아 있다

 

중천리(中川理)

 

  본래 진주군 금산면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개천동·중촌동·말암동 각 일부로서 중천리라 하였다.

  1970년대에 농촌 취락구조 개선사업 시행에 따라 중촌 아래에 현대식 문화주택 마을이 하나 생겼고 공군교육사령부 이전에 따라 크게 발전하고 있다.

구암(龜岩) : 면의 서쪽 끝 바위산 위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말암(末岩), 또는 끝구석이라 해서 말우미(末隅未)라고도 하였는데 그런 뜻보다 마을의 형국이 거북같다 하여 구암(龜岩)이라 하였다.

구암잠수교 : 구암마을 서쪽에 있다. 길이 370m, 폭 6m로서의 금산면과 진주시를 연결하는 유일한 교통로이다. 1973년에 중공되었다. 1936년(병자년) 대홍수를 감안하여 홍수시 물이 다리위를 넘어갈 수 있도록 놓았는데 남강댐 준공으로 잠수치 않는다. 잠수교란 이로 인한 이름이며 예날에는 구암 나룻터가 있었다.

금호지구양수장 : 마을 서쪽에 있다. 진양농지개량조합 소유의 양수장이다. 금호지 못 물로 관개(灌漑) 하였던 들 이름을 따서 금호지구양수장이라 한다.

대강(對江)들 : 동쪽에 있는 들이다. 남강을 대하고 있다 하여 대강들이라 한다.

청천(晴川) : 남강가에 위치했다하여 개천, 개내라고 하다가 1932년 이후 청천이라 하였다.

맷등거리 : 북쪽에 있는 들이다. 묘가 있다하여 이름 지은 곳이며 일명 건구머리 라고도 한다.

대밭고개 : 북쪽 상덕의(上德儀)로 가는 고개이다. 양쩍에 대밭이 무성하다 하여 유래한 것이다.

미륵불 : 서쪽 절벽 위에 있다. 높이 1m되는 미륵불이 있었다하여 유래한 말이다.

선달소 : 서북쪽에 있는 소(沼)이다. 선달이 말을 타고 가다가 빠져 죽었다고 하여 선달소라 하였지만 지금은 메워져 밭이 되었다.

솔지석 : 북쪽에 있는 모롱이이다. 형국이 솔같이 생겼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참의골 :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서니기 : 북쪽에 있는 들이다.

배양골 :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중천(中川) : 본래 중촌동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중천이라 불리었다.

마을 앞 건너편에 큰 내가 있다. 금산초등학교, 진주동중학교가 있고,취락구조 개선마을, 공군교육사령부 이전에 따른 이주민들의 현대식마을 등 중천리 3개 행정마을 중에서 으뜸 가는 마을이다.

수정촌 : 옛날 강성재 응태(姜誠齋應台)가 태어나 수신제가를 성심껏 닦아 수성촌이라 하였는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수정촌이라 부르다가 1988년에 공군교육사령부에 편입되었다.

신당산(新唐山) : 마을 북쪽에 있다. 산 높이 64m로 진주동중학교가 남쪽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창골(社倉) : 남쪽에 있는 다락논 들이다. 논 아래에서 쳐다보면 꼭 밭같고, 논 위에서 내려다보면 벼 논 같다. 옛날부터 복이 많아야 소유할수 있었다 한다.

오방골 : 남쪽에 있는 골이다. 옛날부터 다섯장수가 태어났다고 하여 오방골이라 한다.

자래징 : 북쪽에 있는 산 고개이다. 지형이 자라목처럼 생겼다하여 붙어진 말이다

 

장사리(長沙里)

 

  1914년, 대여촌면 가방동·사동·금산면 중촌동 각 일부로서 장사리라 하였다.

월아산 아래 안심방(安心坊)으로부터 집현면 덕오리 경계까지 길게 연한 금산면의 삼분지 일을 점한 가장 큰 리동이며 면사무소, 경찰지서, 농협, 우체국 등 각 기관이 소재한 민행정 중심지역이다. 삼거리로서 상가, 개량주택, 아파트 등이 밀집하여 면의 요충지대로서 택지개발 등 앞으로 무한히 발전될 지역이다.

상의(上儀) : 금호의 큰들 윗쪽에 있다. 신당산 서쪽 남강가에 농사짓기 편리한 평탄한 마을이다. 본래 덕의리의 일부였다. 덕평의 윗쪽에 위치했다고 하여 상의이다. 전하여 오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관한 문헌은 없으며 대성(大姓)이 없는 집성마을 이다.

덕의(德儀) : 금호의 큰들 가운데 있는 집단마을이다. 큰들 가운데 새로생긴 마을이다.

  덕의를 상·하로 분동하면서 상덕의라 하고 하덕의는 덕의라 하였다.남강댐 축조 이전에는 홍수피해를 입었으나 댐 준공과 금호제 완성으로 홍수피해 염려가 없는 영농 안전지대로서 녹색혁명 당시 통일벼 재배의 발상지이기도 하며 고등채소, 시설원예가 잘되는 마을이다.창동 당시에는 농막형태의 마을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현대식 개량 농촌 이며 70년대 새마을 사업이 잘된 마을이다. 진양정씨가 대성을 이루며 대평면 수몰지구 이주민 창원황씨들이 이주하여있다.

금호제방 : 서북쪽에 있는 제방이다. 남강에서 유입되는 홍수를 막기 위하여 1960년대에 축조되었다. 금호지, 금호양수장의 몽리면적 중 가장 큰 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든 뚝이기에 금호 제방이라 한다.

찬물새미 : 서쪽에 있었다. 아주 물이 차고 수질이 좋은 샘이었다. 금호제방을 만들 때 없어졌다고 한다.

뒷들 : 뒤에 있는 들이다. 남강의 하천부지가 대부분이었으나 지금은 불하된 개인 땅이다.

남강범람 때 침전된 사양토로 시설하우스가 잘되는 적지이다.

덕정(德亭) : 마을 뒷산 고등산(高嶝山)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금호 큰들을 눈 앞에 바라보는 경관이 아주 좋은 마을이다. 본래 대여촌의 지역이며 금산면의 행정리동의 하나이다. 마을 앞에 큰 정자나무가 있다하여 덕정이라 하였다 한다. 1932년 면사무소가 현위치로 이전되기 전에는 이 마을 장사리 663번지에 있었으며 진양강씨가 대성이다.

가장골 : 북쪽 고등산 골짜기이다. 옛날 이곳에서 시신을 가장(假葬)했다고 지은 이름이다.

몰매등 : 가장골에 있는 등성이이다. 임진왜란 때 장수의 말을 묻었다고 한다.

현지(玄池) : 마을 윗쪽에 못이 있는데 못의 생김새가 큰 가마솥과 비슷하다 하여 이름을 가매못이라고 하다가 덕정에서 분동되어 현지라 하였다. 택지조성을로 아파트 건축 등대사마을과 같이 개발이 한창이다.

매산이밭골 :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비선골 :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물뱅이 : 서쪽에 있는 들이다. 가매못의 물을 받아 농사 지었다고 하여 이름지은 곳이다.

제사고개 : 동쪽에서 사동마을로 가는 고개이다.

통새미 : 물뱅이 밑에 있는 샘이다.

식림산 : 뒤쪽에 있는 산이다. 마을 사람들이 해마다 조림한 산이다.

대사(大寺) : 1932년 덕정에서 면사무소가 이전한 곳이다. 면사무소, 농협, 경찰지서, 우체국,농촌지도소 지소 등 각 기관 및 상가가 밀접한 면의 중심지이다.옛날 큰절(大寺)이 있었다하여 한절이라고 한다. 절은 임진왜란때 불타 없어졌다고 하며 1970년대에 대명암이란 암자가 지어져 현존하고 있다. 금호못 서쪽 산 기슭에는 1935년(을해년)에 건축한 금호정(金湖亭)이 있고 그앞에는 조선조 퇴계(退溪)선생의 과청곡사시(過靑谷寺詩)가 새겨진 비가 있다. 그앞 금호못 둑에도 퇴계선생원운(退溪先生原韻)이 비석이 있다.

삼거리 : 면사무소 서쪽 약100m 지점에 있다. 가방리, 용아리, 진주방면으로 가는 길이 합쳐진 곳으로 교통요충지대이며 상가지대이다.

옹짐고개 : 삼거리에서 가방리 방면으로 가는 고개이다. 옛날 이곳에서 옹기를 구웠다고 한다.

사동(沙洞) : 조선조 후기 대여촌면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금산면에 편입된 행정리동이다. 월아산 무제봉(일명 국사봉)에서 서북쪽으로 휘어잡아 돌면서 못을 이룬 것이 금호지이다. 그못 북동쪽 안에 위치한 마을이다. 무제봉 통사바위에서 내려다 보면 그 형국이 흡사 가래삽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삽골, 삿골로 불려지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진양정씨가 대성으로 살고 있다. 창동 때에는 경주김씨가 선주(先住)한 것으로 전하여지고 있으며 창동때심은 것으로 추측되는 둘레 5m가량의 모과나무가 1970년대까지 있었으나 그후 부산으로 이식되었다 한다.

못 안 : 금호못 안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수사 정은부 가 출생했고 또 살던 곳이다.1970년대 취락구조 개선사업으로 정비되었다.

불당골 : 안심방에 있는 골짜기이다. 옛날에 절이 있어 불당골이라고 한다.

암심방 : 월아산 서북쪽 산아래 있는 마을이다. 임진왜란때 안심하고 피난할수 있었다하여 안심방이며, 한번 들어오면 그 안에서 안심하고 눌러 앉아 살았다 하여 앉음방이라고도 한다. 아산재(牙山齋)가 있으며 금산면의 가장 오지이다. 단양장씨가 5호 살고 있다.

합제곡(合濟谷) : 사동 동쪽 고개넘어 있는 오지마을이다. 대곡면 덕곡으로 건너는 나루터가 있어 그 목을 합제골이라 한다.

모과골 : 사동 안골에 있는 골짜기이다. 창동 당시 모과나무를 심었다고 하여 전해진다.

양씨밭골 : 옛날 양씨가 살았다는 골짜기이다

 

갈전리(葛田里)

 

  본래 진주군 조동면의 지역으로서 고려말 우왕 12년(1386)경부터 있던 마을이다. 백마가 가던중 목이 말라 거마치(去馬峙)에서 쉬어 물을 마시고 갔는데 그 형국이 구시 같다하여  조도면이라 이름지은 곳이며 또 칡이 많으므로 치랏 또는 갈전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주군 조동면 호암동(槽洞面虎岩洞)·갈전동(葛田洞)·속사동(束沙洞) 각 일부로서 갈전리(葛田里)라 해서 금산면의 법정리동의 하나이다.

  창동 당시에는 초계변씨(草溪卞氏), 고령신씨(高靈申氏), 창녕성씨(昌寧成氏) 등이 정착 하였는데 지금은 고성이씨(固城李氏), 장흥고씨(長興高氏), 밀양박씨(密陽朴氏)가 대성으로 살고 있다. 1110 여년의 역사깊은 청곡사(靑谷社)와 성은암(聖隱庵)이 유명하다.

 

신기(新基) : 갈전리의 속리로서 전에는 조동면의 한 마을이었다. 조동마을 동쪽에 새로 자리잡은 마을이라 하여 신기라고 하였다.

거마재 : 신기마을 북쪽에서 월아마을로 가는 고개이다. 형국이 말이 가는 길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이름 이다.

방아골 : 북쪽에 있는 골이다. 건너편 산 모양이 나비가 꽃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 하여 유래된 것이다.

아구재 : 월아 정새미 뒤에서 신기 윗쪽을 지나 문산면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골모양이 범모양으로 생긴데서 유래된 것이다.

아구재못 : 아구재 밑에 있는 못이다.

웃 들 : 신기 윗쪽에 있는 들이다.

장군대 : 월아산 두 봉우리 중의 하나이다. 금호지 동쪽에 있는 해발 482m의 진양의 명산이다. 임진왜란때 충용장군 김덕령(忠勇將軍金德齡)의 진터가 있다 하여 지은 이름이다. 산중턱에는 청곡사, 성은암, 두방사가 있다.

청곡사(靑谷寺) : 월아산 서쪽 골짜기에 있다. 깊숙한 숲 속에 자리잡고 있는 절이다.

  서기 879(신라 헌강왕 5년)에 연기조사(烟起祖師) 도선 이 월아산 서쪽숲을 돌아드니 많은 학이 앉아 있으므로 이곳이 절터로서 좋은 자리라 하여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그후 고려말 우왕 때 상총(尙聰)이 중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전소된 것을 광해군 때 계행(戒行) 극명(克明) 양 대사가 3창하였으며 조선조 말에 포우(包雨)대사가 사찰 전체를 중수하였다고 한다. 지금의 대웅전은 1612년(광해군 4년)에 재건한 것으로 도지정 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찰 입구에는 방학교(訪鶴橋), 환학루(喚鶴樓)가 있다. 그밖에 도지정 문화재 제5호인 삼층석탑과 제261호인 괘불 및 괘불함, 그리고 도지정 문화재자료 제107호인 업경전 등이 있다.

성은암(聖隱庵) : 청곡사 윗쪽 산 중턱에 있는 암자이다.

방 터 : 청곡사 뒷산에 있다. 옛날에 절이 있었다고 하여 방터라고 한다.

조동(槽洞) : 조선조 후기 조동면의 근기가 되는 갈전리에서 으뜸가는 마을이다. 마을 지형이 말구시(구유) 형국이라 하여 이름 지은 곳이다.

조동숲 : 조동의 서쪽에 있는 숲이다. 1588년(선조 18년)경에 조동마을 방풍을 위하여 조성한 것이다. 2,000평 규모에 서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등 이백여 그루의 아름들이 수목이 숲을 이루고 있다.

검단이(劍斷) : 조동 남쪽에 있는 골이다. 골 형국이 칼끝 모양으로 뽀족하게 생겼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돌말끝 : 조동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동민의 무사태평을 위하여 지신을 달랜줄돌이 일곱 개가 있는데 일명 마구할머니 줄바위(고인돌)라 한다.

동네새미 : 조동 중앙에 있다. 동민의 공동우물이다.

못안골 :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마삼못 안쪽에 있다하여 지은 이름이다.

숲안들 : 조동숲 안쪽에 있는 작은 들이다.

왕당골 : 조동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조동밭 : 조동숲 밖에 있는 밭 들이다. 밭에서 돌도끼, 돌솥, 화살 등이 돌뚜껑 밑에서 나왔다고 한다.

중마을(中村) : 조동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갈전리의 중앙쯤 된다고 하여 중마을 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암호형상(岩虎形象)이라 하여 호암동(虎岩洞)이라고도 하였다. 일설에 의하면 당시 세도가 좋은 홍씨(洪氏)가 청곡사와 사이가 안좋아 중이 홍씨문전을 지낟다닐 수 없어 산을 넘었다하여 중 마을이라 했다 한다.

중말골 : 중 마을 윗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중말들 : 중 마을에 있는 들이다.

중말못 : 중 마을에 있는 못이다

 

속사리(束沙里)

 

  1914년, 진주군 금산면 백동(今山面栢洞), 조동면 속사동(槽洞面束沙洞) 각 일부로서 속사리(束沙里)라 하였다.

속사(束沙) : 남강(南江)과 영천강(潁川江)이 합류되는 지점의 안쪽이므로 안새울,속새울 또는 속사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백동(栢洞) 일부를 병합하여 지금의 금산면 법정 리 동의 하나가 되었다. 하나의 법정리동이 하나의 행정리동을 이루는 171호의 대촌(大村)이다. 1970년대에 취락구조 개선사업이 실시되고 현대식 농촌구조로 형성되어 고등소채시설 하우스의 발상지가 되엇다.

  김해김씨(金海金氏), 영일정씨(迎日鄭氏), 밀양박씨(密陽朴氏), 고성이씨(固城李氏)가 대성 이다.

갓 골 : 속사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지형이 갓처럼 생겼다고 한다. 1988년도에 공군교육사령부에 편입 되었다.

구름등 : 속사마을 뒤쪽에 있는 벼랑으로 된 산이다. 건너편에서 보면 벼랑이 병풍처럼 보인다고 한다.

구석몰 : 북쪽 구석진 곳에 있다하여 지어진 마을 이름이다.

갈마새미 : 속사마을 중앙에 있는 아주 수원 좋은 샘이다. 물이 솟아오를 때 말미풀이 떠있는데 약효가 있다 한다. 태조 이성계가 갈마 새미에서 만난 아가씨와의 사랑이야기도 있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당 골 : 중앙에 있는 마을이다.

대밭골 :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대나무가 많아서 대밭골이라 한다.

덤밑들 : 서쪽에 있는 들이다. 벼랑으로 된 구름등 덤밑에 있다하여 지은 이름이다.

도매못팅이 : 동쪽에 있는 모퉁이이다. 산뿌리가 획 돌아있다하여 지은 이름이다.

마삼산(馬三山) : 동쪽에 있는 산이다. 말 세 마리가 뛰어오는 형국이라 하여 말앞대기 (말상) 이라고도 한다.

밥봉(食峰) : 동쪽에 있는 산봉우리이다. 밥을 소복히 담은 밥그릇 처럼 생겼다 한다.

밭들 : 남쪽 밭이 많은 들이다. 1970년대에 경지정리되어 개답(開畓)되었다.

무학덤 : 북쪽에 있는 덤이다.부엉새가 살고 있다 한다.

새장터 : 송백에서 문산시장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장길에서 돌아오는 도중에 새로 장이 선다고 하였고 씨름놀이 등 민속경기도 하였다.

성지골 :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옛날에 서재(書齋)가 있었다.

세솥들 : 남쪽에 남쪽에 있는 들이다. 남강과 영천강이 합수되어 돌(재갈)을 씻어 내려 간다고 하여 불려진 것이다.

세앙골 : 북쪽에 있는 가느다란 골짜기이다.

야앙골 : 북쪽에 있는 양지바른 마을이다.

우와골(牛臥) : 속사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지형이 속가 누워 있는 형국이라 한다.

장승개 : 서쪽에 있는 들이다. 옛날 장승이 있었다 한다.

할미당 : 북쪽에서 송백리 어유골로 가는 고개이다. 옛날 당집 및 조산이 있었으나 지금은 공군사령부에 편입되어 흔적도 없다.

금선봉 : 북쪽에 있다. 청재갈로 형성된 산이다. 신산이 내려와서 가야금을 퉁기는 형국이라는 설이있다